*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가 202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개인의 기억과 가족 서사를 통해 되짚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이야기를 통해, 그가 살아온 삶과 시대의 굴곡, 그리고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되돌아봅니다. 이 소설은 개인의 삶과 국가의 역사가 얽히는 지점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진실과 감정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정지아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문체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성찰을 선사합니다.
해방 이후의 삶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되며, 그의 과거를 되짚는 과정에서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면이 드러납니다. 아버지는 해방 전후 좌익 운동에 몸담았고, 그로 인해 가족은 여러 차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시대의 폭력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해방이 단지 자유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과 분열의 서막이기도 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이상을 꿈꾸었지만, 그 이상은 냉전과 분단의 현실 속에서 꺾이고 왜곡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치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와 가족 모두에게 소외된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작가는 국가와 이념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흔적을 남기는지를 묘사합니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갖는 복합적인 의미—자유, 혼란, 책임—가운데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유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중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개인의 서사로 녹여내며, 역사란 거대한 흐름 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모인 것임을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들려줍니다.
가족과 기억
이 소설은 단지 아버지라는 인물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그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시선을 통해 기억의 복잡성과 주관성을 조명합니다.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존재였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조금씩 새로운 시선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각 인물의 대화, 생각,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기억이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한 사람의 삶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때로는 침묵과 오해 속에 감춰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과정은 곧 가족 간의 거리와 화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기록들은 가족들에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진실을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됩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단지 이상주의자나 독재적인 가부장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복잡했던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가족, 특히 부모 세대에 대한 이해의 통로를 제공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기억이란 결국 관계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 이해하려는 시선, 그리고 용서하려는 마음이 모일 때, 비로소 가족이라는 관계가 다시 연결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
소설의 핵심은 ‘이해받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여정’에 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며, 그가 남긴 흔적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씩 마주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딸은 아버지를 단지 ‘가족을 힘들게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개인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이해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앙금, 기억의 왜곡, 주변인의 해석이 얽히며 딸은 수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그랬을까?”, “그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지만, 그 답을 찾으려는 태도 자체가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 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릴 적엔 단지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 청년기엔 낯설기만 했던 그의 고집,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모든 것이 이해와 연민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결국 사랑과 이해의 이야기입니다. 이해할 수 없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 또한 변화해가는 주인공의 내면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게 될 ‘가족 이해의 시간’을 잔잔하게 그려냅니다.
-마치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가족의 의미, 그리고 인간 이해의 깊이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정지아 작가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체로,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감정의 흐름과 그 안에 깃든 삶의 무게를 진심으로 그려냅니다.
이 책은 가족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역사 속 개인의 삶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 조용한 깨달음을 품은 아름다운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