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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웃음의 심리학』 : 웃음은 왜 진심이 아닐까, 미소에 담긴 권력과 젠더, 사회적 도구로서의 웃음

by kdsnews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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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심리학』은 심리학자 마리안 라프랑스가 ‘웃음’이라는 인간 행동을 심리학, 진화생물학, 사회학, 젠더 이론 등 다양한 시선으로 분석한 심층 심리서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웃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기쁨이나 유쾌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추고, 때로는 타인을 조종하거나,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기 위해 웃기도 합니다. 『웃음의 심리학』은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웃음’의 세계를 과학적 실험과 흥미로운 사례를 바탕으로 날카롭고 유쾌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웃음은 왜 진심이 아닐까

라프랑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웃음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미소는 꼭 유쾌함이나 즐거움을 의미하지 않고, 종종 사회적 전략이나 감정 조절 도구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기 위해, 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웃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속으로는 분노하거나 불안할 때조차 표면적으로는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웃음’은 인간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웃음은 감정 표현인 동시에 감정 통제의 기술입니다.

그녀는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별하는 신체적 단서들도 소개합니다. 예컨대 진짜 웃음은 눈 주변의 근육까지 움직이는 ‘뒤셍 웃음(Duchenne smile)’이지만, 가짜 웃음은 입만 웃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지속 시간과 타이밍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점 등을 통해 웃음의 진위를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웃음의 심리학』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며, 감정 표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미소에 담긴 권력과 젠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웃음과 권력, 그리고 성별의 관계입니다. 라프랑스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자주 웃는 경향이 있으며, 그 이유가 단순히 친화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성의 웃음은 종종 타인의 감정을 조율하고, 위협을 줄이며, 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웃음은 ‘감정 노동’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는 웃음이 계층적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더 자주 웃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미소를 ‘선택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는 웃음이 단순한 호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표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흥미롭게도, 여성의 웃음은 종종 ‘순응’이나 ‘온순함’의 신호로 해석되는 반면, 남성의 웃음은 자신감이나 여유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웃음이라는 행동조차 젠더 규범과 문화 코드에 따라 달리 해석됨을 보여줍니다. 웃음은 성별에 따라 그 기능과 의미가 달라집니다.

『웃음의 심리학』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던 ‘웃음’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게 만들며, 웃음이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언어인지를 다양한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사회적 도구로서의 웃음

웃음은 감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관계를 조절하는 강력한 사회적 신호입니다. 라프랑스는 웃음이 다른 사람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위협을 줄이며, 집단 내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낯선 상황이나 위태로운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웃으면 분위기는 빠르게 누그러지고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그녀는 웃음이 의사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때로는 진실보다 더 강한 신뢰를 낳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말보다 먼저 웃음이 전달되면 상대는 그 웃음을 해석하며 의도를 판단하고 반응합니다. 이처럼 웃음은 무언의 언어이자 의사소통의 첫 문장입니다.

또한 웃음은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공통의 농담에 웃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소속감이 형성되며, 웃지 않는 이들은 ‘외부자’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웃음은 포용과 배제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양면적 기제를 가집니다. 웃음은 무리 안팎을 가르는 경계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웃음의 심리학』은 웃음을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 권력, 감정의 흐름을 조정하는 복합적인 사회적 도구로 재정의합니다.

 

-마치며

『웃음의 심리학』은 하루에도 수없이 짓는 ‘웃음’이라는 행동이 얼마나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심리적 작용인지를 날카롭고도 깊이 있게 탐구한 책입니다. 마리안 라프랑스는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온 웃음의 이면에 권력, 젠더, 사회적 역할, 감정 조절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풍부한 연구와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감정 표현과 인간관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사회적 행동의 심리학적 원리에 관심 있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매일 나누는 웃음 속에 담긴 진짜 메시지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통찰과 지적 재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웃음의 심리학』은 가장 일상적인 행동 속에 숨은 가장 복잡한 심리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심리 인문서의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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