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에세이스트인 하지현 교수가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안에서 어떤 변화와 반성이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인문학적 시선과 의학적 경험을 교차시키며 풀어낸 책이다. 정신의학은 단순히 질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해석하고, 그 고통의 근거를 찾아나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복잡하고도 섬세한 특성을 지닌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이 분야가 겪어온 오해와 진보,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를 치열하게 성찰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하지현은 정신의학이 오늘날까지 오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었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질환을 ‘의지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 오해해왔고, 그 결과 정신질환자들은 단순한 질병을 앓는 환자가 아닌 위험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곤 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는 치료의 기회를 박탈하고, 환자 스스로를 숨게 만들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과 제도, 언론 보도 방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현은 “정신과에 간다”는 말을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아파도 진료를 받는 것이 당연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는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자기 고통을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회가 그 고통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슬픔, 상실, 외로움,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며, 그 감정이 지나치게 커졌을 때 치료가 필요한 것일 뿐 ‘비정상’이나 ‘이상’의 표식이 아니라는 점을 끊임없이 되짚는다. 정신의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과학이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새롭게 정리하며, 감정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치료의 진화와 과학적 전환
책은 정신의학이 겪어온 치료의 역사와 과학적 진보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과거의 정신질환 치료는 체액설, 종교적 처벌, 격리와 감금 등 비과학적이고 비인도적인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정신의학은 뇌 과학과 약물 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보다 근거 기반의 치료로 방향을 전환하며 의학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해왔다.
하지현은 약물치료에 대한 오해도 바로잡는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는 단지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약물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심리 상담, 생활 패턴의 변화, 사회적 관계 회복 등이 함께 병행되어야 보다 효과적인 회복이 가능하다. 그는 정신의학이 ‘통합적 치료’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정신의학의 발전은 환자를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능케 했다. 의료인 중심의 권위적 치료가 아닌, 환자와의 협력적 관계 속에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중요해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진정한 회복과 자기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한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을 넘어 과학적 근거와 인간적 존중이 함께하는 치료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다.
정신과가 말하지 못한 것들
하지현은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의학이 여전히 말하지 못한 것들, 또는 말하지 않아온 것들에 대해서도 성찰한다. 정신의학은 많은 부분에서 발전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놓친 인간의 서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표준화된 진단 기준과 통계적 평가 중심의 치료는 때때로 환자의 삶 전체를 놓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정신과는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숫자 너머의 감정과 서사를 함께 들어야 한다.
그는 실제 진료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과적 진단이 어떻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낙인이 되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 진단은 분명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환자가 자기 자신을 질병으로만 인식하는 순간 삶의 의미는 오히려 축소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정신과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존중과 겸손 위에 서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그는 정신의학이 사회 구조나 삶의 조건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많은 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료는 개인 내부뿐 아니라 외부 환경을 이해하고 바꾸는 방향으로도 나아가야 한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과 의사의 성찰과 질문을 통해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윤리적 과제와 미래의 방향성을 깊이 있게 조망하는 책이다.
-마치며
『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과 진료의 실천 현장과 학문적 고민을 오가며 정신의학이라는 분야의 본질과 가능성을 치열하게 성찰한 책이다. 하지현은 이 책을 통해 정신의학이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응답하는 방식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정신과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 심리학이나 정신건강을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풍부한 통찰과 따뜻한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정신의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시대의 고통과 회복을 함께 성찰하게 만드는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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