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유대교 랍비 헤롤드 쿠슈너가 자신의 아들이 희귀 유전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삶의 고통과 신의 정의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며 써 내려간 깊은 위로와 통찰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종교적 변론이나 신학 이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슬픔과 불공정함을 껴안고 그 안에서 의미를 되찾기 위한 한 인간의 고백이며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왜 나쁜 일이 선한 사람에게 일어나는가, 이 질문에 쿠슈너는 정면으로 답한다.
고통과 신의 뜻은 일치하는가
쿠슈너는 책에서 먼저 ‘신이 전능하다면,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오랫동안 신에게 분노했고, 신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조종하는 존재라면 그 계획 속에 왜 이런 불행이 들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결국, 신은 전능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는 존재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 도달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통과 비극은 신의 의도가 아니라, 자연 법칙과 인간의 자유 의지, 우연한 사건들이 얽힌 결과이다. 신은 인간의 고통을 의도하지 않지만, 그 고통 속에 함께 존재하며 사람들이 그것을 견디도록 돕는 존재이다. 신의 역할은 통제자가 아니라 동반자이다.
이러한 해석은 전통적인 종교관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쿠슈너는 이런 해석을 통해서만 신앙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 모든 고통을 계획한 존재라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사랑하거나 믿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신의 자리를 새롭게 정립하려 한다.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신의 정의와 인간의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신앙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진실하게 고민한 책이다.
신앙과 상실의 공존
쿠슈너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삶에서 불행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앙은 고통을 제거해주는 방패가 아니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뿌리 같은 것이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신에게 실망하고 멀어졌던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그 고통을 껴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신이 그와 함께 슬퍼해주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을 겪을 때 신을 원망하거나 신앙을 포기하게 된다. 쿠슈너는 그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며,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충분히 느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앙은 고통을 무효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그 고통을 지나온 후에도 자신을 지탱하게 만드는 관계이다.
그는 슬픔과 신앙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통해 신앙이 깊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신을 향한 분노나 절망조차도 신과의 진정한 관계 안에서 가능한 감정이며, 그 감정을 통과한 후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해진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신앙은 결코 완벽한 이해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의 선택이다.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상실의 시간 속에서도 신과의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진실한 동반자가 되어주는 책이다.
인간의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쿠슈너는 고통이 의미 없는 우연일지라도, 그 고통을 마주하는 인간의 태도 속에서 삶의 의미는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통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고통 이후의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아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남겨두는 대신,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쿠슈너는 의미를 새로 구성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 나에게 주는 고통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면, 그 고통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 문장은 고통 앞에서 인간이 여전히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고통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결정짓는 갈림길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고통과 연결 지으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은 단순한 비극으로 남지 않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억이 된다. 공감은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다.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삶의 의미를 고통 이후에 다시 묻는 이들에게 사려 깊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마치며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단순한 신학서도, 위로의 말만 나열한 에세이도 아니다. 이 책은 고통 속에서 신앙을 유지하려는 한 인간의 질문이자, 삶의 무게 앞에서도 희망과 의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깊은 고백이다. 쿠슈너는 모든 고통에 답을 주지는 않지만, 고통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준다.
이 책은 믿음과 상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 삶의 이유를 다시 찾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신앙과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싶은 이들에게 따뜻하고도 단단한 위로를 제공할 것이다.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는 말이 아닌 공감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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