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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천 개의 사랑』 : 언어를 잃은 사랑, 회복은 감정의 또 다른 언어, 기억과 사랑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by kdsnews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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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사랑』은 시인 다이앤 애커먼이 언어학자이자 남편인 폴 웨스트가 뇌졸중으로 언어 능력을 상실한 후, 그와 함께 걸은 회복과 사랑의 기록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말’이 아닌 ‘사랑’의 방식으로 소통하며 어떻게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회고록은 단지 병간호의 이야기나 의학적 치유의 과정을 넘어, 인간이 언어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며 기억, 정체성, 애정의 본질을 되묻는다. 『천 개의 사랑』은 슬픔을 견뎌내는 방식이자, 사랑이 재탄생하는 여정을 담은 문학적 헌사다.

언어를 잃은 사랑

다이앤 애커먼은 남편이 쓰러지기 전 그가 누구보다 언어에 정통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수많은 책을 썼고, 말장난과 수사학을 즐겼으며, 언어를 삶의 중심으로 삼았던 남편이 한순간에 단어를 잃었을 때 그 충격은 단순한 기능 상실이 아니라 정체성의 붕괴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부터 다시 남편과의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절망과 혼란이 컸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그의 반응은 낯설었으며, 익숙한 일상이 낯선 전쟁터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말보다 중요한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고, 표정과 손짓, 눈빛, 침묵으로 남편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랑이 꼭 말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간다.

이 과정에서 애커먼은 사랑이란 상대방이 누구인지 계속 기억해주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언어가 사라져도, 몸이 아파도, 상대의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알아보려는 의지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더라도, 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녀를 움직였다.

『천 개의 사랑』은 언어가 사라진 뒤에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으며, 그 관계의 중심에는 의미보다 존재 자체를 끌어안으려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복은 감정의 또 다른 언어

남편 폴 웨스트는 뇌졸중 이후 브로카 실어증을 겪으며 간단한 단어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이앤은 그 회복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도 행동과 표정, 반복되는 일상의 제스처 속에서 그는 감정을 전달했고, 그녀는 그 속에서 작은 진전을 찾아냈다.

애커먼은 이를 ‘감정의 언어’라 표현한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존재하고, 때로는 말보다 더 정확하게 통한다. 그녀는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놀이 같은 언어 연습 속에서 남편의 눈빛과 손짓을 통해 서로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낀다. 감정은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그녀는 회복의 과정이 단지 뇌 기능의 회복이 아닌, 관계의 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말이 없어도 함께 웃을 수 있고, 작은 농담을 눈빛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회복은 단지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정서적 교류의 결과이기도 하다.

『천 개의 사랑』은 상실 이후에도 관계가 회복될 수 있으며,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기억과 사랑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애커먼은 이 책에서 기억이 사랑을 어떻게 지탱하는지를 탐구한다. 남편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때, 그녀는 그가 누구였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기억은 단지 과거의 축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이 연결될 수 있게 해주는 끈이다. 그녀는 추억을 꺼내 들려주고, 익숙한 음악을 함께 듣고, 오래된 농담을 되풀이하며 그의 정체성을 복원하려 노력한다.

그녀는 말한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기억해주려는 일이라고. 상대가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그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다고. 이 문장은 고통 속에서도 사랑이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강하게 증명한다.

기억과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연결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 시간, 서사의 공유이며, 같은 삶의 맥락을 이어주는 작업이다. 그녀는 남편이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그가 품고 있던 언어와 감정, 기억을 대신 기억하며 그의 삶을 지켜나간다. 이 행위는 사랑의 궁극적 형태다.

『천 개의 사랑』은 기억이 사라질 수는 있어도, 사랑이 그 기억을 붙잡고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증명해 보인다.

 

-마치며

『천 개의 사랑』은 말을 잃은 남편과 감정을 잃지 않은 아내가 함께 재건한 사랑의 기록이다. 다이앤 애커먼은 이 책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으며,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닌 기억과 감정, 의지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문학적인 언어로 전달한다.

이 책은 상실과 간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언어 바깥에서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회복력과 감정의 깊이에 대해 성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천 개의 사랑』은 사랑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강인한지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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