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그 후』는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맬컴 포츠와 로저 쇼트가 인간의 성과 번식, 욕망, 성 역할에 대해 과학적‧인류학적 관점으로 통찰한 교양 과학서입니다. 책은 ‘왜 인간만이 평생 동안 성행위를 지속하는가’, ‘왜 성별에 따른 역할이 고정되었는가’ 같은 본능적이지만 민감한 질문을 진화생물학, 의학, 인류학의 관점으로 객관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단순한 성교육이나 문화론이 아닌, ‘인간의 성’이 생존과 진화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본질적으로 묻는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왜 성이 지속적인 갈등과 억압의 대상이 되는지도 함께 고민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이브 그 후』는 과학적 사실을 통해 감춰진 본능과 사회적 규범을 교차 분석한 뇌와 몸, 문화의 탐구서입니다.
인간의 성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맬컴 포츠와 로저 쇼트는 인간의 성이 단순한 쾌락이나 번식의 수단이 아니라 진화적 관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특징을 지녔다고 봅니다. 특히 인간은 가임기 외에도 성관계를 지속하며, 다른 영장류와 달리 배란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은폐 배란(concealed ovulation)’을 가진 몇 안 되는 종입니다. 이는 인간의 짝짓기와 관계 유지를 단순한 생식 이상의 의미로 확장시켰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성이 ‘사회적 결속(social bonding)’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생식기구가 단지 생명 탄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유대, 육아 협력, 집단 내 갈등 완화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능은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문명과 협업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 여성은 임신 중에도 성관계를 유지하고, 성적 표현이 단지 수컷의 구애가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매우 특이한 진화적 특징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성을 문화적으로도 훨씬 풍부하게 경험하게 되었고, 그만큼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 그 후』는 성의 진화가 단순히 유전자 복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 형성의 근간이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히며, 성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재고하게 만듭니다.
생물학이 말하는 성차와 욕망
책의 또 다른 핵심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차이가 얼마나 생물학적으로 형성되고, 어디까지 문화적으로 구성되는지를 정확하게 구분하려는 시도입니다. 저자들은 호르몬, 생식기 구조, 성 반응 주기 등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하면서도, 그 차이가 어떻게 사회적 고정관념과 맞물리며 ‘차별의 기초’로 오용되어 왔는지를 비판합니다.
특히 성욕에 관한 연구에서 남성은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고, 여성은 감정적 유대나 언어적 자극에 반응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 그 근거가 문화적 맥락에서 얼마나 강화되었는지를 지적합니다. 즉, 뇌와 호르몬은 일정한 성향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욕의 표현과 제어는 문화와 교육, 관계 맥락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들은 사춘기 이후의 성 발달과 성적 지향, 성폭력과 억압,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들에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접근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화론적 설명이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분명한 윤리 의식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이브 그 후』는 생물학과 성차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가 성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지식의 기반에서 해체하고,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성 인식을 확장시켜 줍니다.
문명화된 본능의 사회학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성이 어떻게 억압되고 또 때로는 과장되어 왔는지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저자들은 종교, 정치, 법률, 교육 제도가 인간의 성적 본능을 어떻게 통제해왔는지를 추적합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말조차 사회적으로 조작된 결과임을 드러냅니다.
종교는 성을 죄악시하고, 정치는 성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법은 성을 규율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교육은 성을 숨기거나 왜곡해 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거나 표현할 기회를 잃고, 타인의 시선과 규범에 맞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은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수치심과 죄책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성을 금기로 삼으면서도 또한 상품화하고 과도하게 소비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성이 여전히 인간 본성과 사회 제도의 충돌지점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은 그 간극을 메우는 방법으로 객관적 지식과 열린 대화를 강조합니다. 이해와 존중이 결여된 채 억압되거나 왜곡된 성은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 그 후』는 성이라는 주제를 과학과 인문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입체적 시선으로 해석하며, 우리 사회가 ‘성숙한 성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마치며
『아담과 이브 그 후』는 인간의 성과 본능, 관계와 규범을 정직하고 과학적인 언어로 풀어낸 희귀한 교양 인문서입니다. 맬컴 포츠와 로저 쇼트는 진화생물학과 의학, 사회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지식과 윤리의 시선으로 성찰합니다.
이 책은 성에 대해 편견 없이 배우고 싶은 독자, 생물학과 사회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에 관심 있는 이들, 그리고 건강하고 평등한 성 담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명료하고 유익한 지적 자극을 제공합니다. 『아담과 이브 그 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과 본능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주는 지적인 성(性)의 인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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