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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시선은 권력이다』 : 시선이 만든 위계,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일상 속 권력의 철학

by kdsnews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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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권력이다』는 철학자 박정자가 일상 속 시선의 구조와 그 이면에 숨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통찰의 에세이입니다. 우리는 무심코 누군가를 보고, 또 누군가의 시선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닌 평가이자 지배이며, 사회와 문화, 제도 안에서 시선은 하나의 위계 구조를 형성합니다. 박정자는 푸코의 감시사회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 등을 바탕으로 시선이 어떻게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 스스로를 규율하게 만드는지를 날카롭고도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무심한 눈빛 뒤에 숨겨진 권력의 실체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시선이 만든 위계

박정자는 시선이 단지 ‘보다’의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를 해석하고, 분류하고, 나아가 평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위계를 형성하며,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에 분명한 권력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누가 누구를 보느냐는 단지 물리적 관계가 아닌 사회적 위치의 표현입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바라보고, 감독이 직원의 업무를 지켜보며, 사회는 여성의 몸을 지속적으로 평가합니다. 그 모든 시선에는 ‘우위의 자리’가 깔려 있으며, 시선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조정하며 살아갑니다.

시선의 위계는 시선의 방향만큼이나 그 지속성과 반복성을 통해 공고화됩니다. 사회는 반복적인 시선의 교환 속에서 자기검열을 내면화하게 하고, 결국 자율적인 통제가 아닌 강제된 ‘자기 감시’를 일상화합니다. 시선은 감옥의 벽보다 더 단단한 경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무심코 주고받는 눈길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규율과 위계의 기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얼마나 자주 ‘보는 자의 권력’과 ‘보이는 자의 취약함’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책의 중심에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라는 기본적이면서도 심오한 대립 구도가 있습니다. 박정자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이 이분법 구조가 사회적 관계의 대부분을 규정한다고 말합니다. 보는 자는 권력자이며, 보이는 자는 대상화된 존재입니다. 현대 사회는 이 관계를 확장하고 반복하면서 인간의 존재 방식마저 시선에 맞춰 변형시켜 버립니다.

박정자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 늘어났다고 진단합니다. SNS, 유튜브, 미디어는 끊임없이 ‘보이기 위한 연출’을 요구하며,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장하고 연출하며 ‘보이는 자’가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시선에 길들여진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나’를 잃고 ‘보여지는 나’에 매몰됩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설정하고, 시선의 반응에 따라 기쁨과 슬픔을 결정하게 됩니다. 보는 자가 되지 못한 자는 끊임없이 보이기 위한 피로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소비하게 됩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시선의 구조를 인식하고, 그 구조를 거슬러 진짜 나의 시선과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철학이 시작되는 곳은 ‘타인의 시선’을 끊어내고 ‘자기 시선’으로 돌아오는 자리입니다.

일상 속 권력의 철학

박정자의 시선 철학은 일상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서 빛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시선과 권력 구조를 경험하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녀는 지하철, 길거리, 사무실, 교실 등 누구나 겪는 장소와 상황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며, 시선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감정의 반응을 분석합니다.

그녀가 제시하는 철학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생각하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가 나를 바라보는가, 나는 왜 시선을 피하는가, 어떤 눈길에서 불편함을 느끼는가— 이 모든 질문이 바로 현대 사회의 철학적 문턱이 됩니다. 사유는 그런 자잘한 물음에서 시작됩니다.

박정자는 또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설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 해답은 ‘자기 시선’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타인의 눈이 아닌 자기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일상의 감각에서 시작해 존재의 방식과 사회의 권력 구조까지 치밀하게 파고드는 철학적 탐구이자, 지금 여기의 삶을 더 의식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유의 초대입니다.

 

-마치며

『시선은 권력이다』는 시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인간 존재의 방식을 정제된 언어와 깊은 사유로 풀어낸 동시대적 철학 에세이입니다. 박정자는 시선의 이면에 숨어 있는 억압과 위계를 드러내면서도, 그에 굴복하지 않고 사유하고 주체로 서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타인의 시선에 지친 사람, 일상 속에서 철학적 감각을 회복하고 싶은 독자, 그리고 ‘나답게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전합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는 누구의 눈으로 살 것인가를 되묻는 우리 시대의 철학적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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