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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애도예찬』 : 애도는 왜 필요한가, 상실을 받아들이는 사유, 슬픔을 품는 문학의 힘

by kdsnews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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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예찬』은 문학평론가 왕은철이 죽음, 상실, 슬픔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을 문학과 철학, 일상의 언어로 사유한 깊이 있는 산문집입니다. 그는 “애도는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일”이라 말하며, 죽음을 애써 지우거나 회피하려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애도가 인간다움을 지키는 방식임을 역설합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감정을 응시하고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왕은철은 문학 속 슬픔의 서사, 철학자들의 애도론, 그리고 개인적 상실의 경험을 엮어 ‘애도’의 의미를 따뜻하면서도 단단하게 풀어냅니다. 『애도예찬』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제된 위로와 깊은 통찰을 건네는 책입니다.

애도는 왜 필요한가

왕은철은 애도가 단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라 말합니다. 애도는 존재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재를 인식하고 그 안에 남은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은 뒤에야 그 사람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실감하게 되고, 그 감정은 때로 언어를 넘어서 몸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애도는 이 모든 흔적을 되새김하는 시간입니다.

현대사회는 애도에 인색합니다. 죽음을 사적인 일로 치부하거나, 지나치게 신속하게 잊고 넘어가려 합니다. 하지만 왕은철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감정의 억압을 낳고,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삶의 밑바닥에 쌓인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슬픔을 견디는 것 또한 삶의 기술”이라며 애도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애도는 삶을 지탱하는 ‘윤리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일은 존재에 대한 존중이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그는 이를 “죽은 이를 위한 마지막 예의이자, 산 자를 위한 감정의 정리”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애도는 결국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확장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애도예찬』은 애도의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껴안을 때, 우리는 삶과 죽음을 보다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성찰을 전해줍니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사유

책 속에서 왕은철은 상실의 감정을 회피하기보다 그 감정과 ‘함께 머무는 용기’를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순간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천천히 응시하고, 받아들이고, 자기 언어로 정리할 때 비로소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는 이 과정을 철학자들의 사유와 함께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특히 자크 데리다,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같은 사상가들의 ‘애도론’을 인용하면서 애도란 ‘시간의 층위를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상실은 단순히 감정의 고통만이 아니라 시간의 방향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애도는 그 흐름을 회복하는 사유의 행위입니다. 상실을 정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또한 한국 사회의 집단적 애도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세월호 참사, 팬데믹, 갑작스러운 재난과 비극 속에서 공동체가 슬픔을 나누지 못하고 정치화되거나 상업화된 슬픔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공적인 애도 공간과 시간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합니다. 애도는 개인의 일이지만, 그 애도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기반은 공동체 전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도예찬』은 상실의 슬픔을 품는 것이 결국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식이며, 자신과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철학적 행위임을 조용히 설득합니다.

슬픔을 품는 문학의 힘

이 책은 문학이야말로 애도의 감정을 가장 진실하게 표현해온 예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왕은철은 보르헤스, 릴케, 황지우, 김승희 등 국내외 시인과 작가들의 작품 속에 흐르는 슬픔의 언어를 분석하며, 문학은 슬픔을 정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문학은 애도의 감정을 ‘완결’이 아닌 ‘지속’으로 남겨두는 언어입니다.

그는 특히 시와 산문의 역할을 구분하면서 시는 상실의 고통을 ‘응축’된 감정으로 담아내고, 산문은 그 감정을 천천히 풀어가며 자기 이해로 이어지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두 장르가 가진 애도의 가능성은 슬픔을 미루거나 잊게 하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조금씩 드러나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왕은철은 문학 속에서 죽음을 ‘종말’이 아닌 ‘이어지는 관계’로 보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그러한 문학적 애도는 죽은 자와의 연결뿐만 아니라, 산 자와의 관계도 더 깊게 만들며,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확장하는 방식이 됩니다. 문학은 인간 존재의 상실과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한 고요히 품어주는 언어입니다.

『애도예찬』은 문학이야말로 우리에게 애도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을 남겨주는 삶의 동반자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마치며

『애도예찬』은 죽음과 상실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철학적 산문집입니다. 왕은철은 문학, 철학, 일상, 공동체를 가로지르며 애도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애도할 수 있는지를 진심 어린 언어로 안내합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 상실의 감정 앞에서 길을 잃은 이들, 그리고 슬픔을 자기 언어로 풀어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전합니다. 『애도예찬』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애도의 권리와 감정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철학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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