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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 에로스에서 로맨스로, 사랑과 소유의 모순, 현대인의 사랑이 흔들리는 이유

by kdsnews 202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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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정신의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지적 통찰로 인간 심리와 관계를 분석해온 볼프강 라트가,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복잡한 감정을 역사와 문화, 심리의 층위에서 분석한 명저입니다. 그는 사랑이 항상 고귀하고 순수한 감정으로만 작동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부여받아 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내적 갈등과 모순을 내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이 왜 자주 실패하고, 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지를 정직하고 날카롭게 들여다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심연을 천천히 추적합니다. 이 책은 사랑의 철학이자, 동시에 사랑의 병리학입니다.

에로스에서 로맨스로

볼프강 라트는 사랑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에로스’에서 ‘로맨스’로의 이행 과정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사랑, 특히 에로스는 신적인 욕망이자 창조의 힘으로 간주되었으며, 육체적 매혹과 정신적 고양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의 영향 아래 사랑은 영혼의 구원이나 헌신으로 환원되었고, 육체성과 욕망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며 사랑은 다시 개인의 감정 중심으로 복귀하지만,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맨스’입니다. 이 새로운 사랑의 형태는 순수성과 영원성을 추구하며, 이상적인 결합을 상상하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자주 그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좌절과 실망을 낳습니다. 사랑은 점점 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내포하게 됩니다.

현대에 들어와 사랑은 ‘선택 가능한 감정’이 되었고, 개인의 행복과 성취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라트는 이 지점에서 사랑이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일수록 감정의 책임과 지속 가능성은 낮아지고, 사랑은 자주 소비되거나 소진되는 방식으로 경험됩니다.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이 어떻게 진화했고, 그 진화가 어떤 감정적 모순과 병리를 낳았는지를 역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짚어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사랑과 소유의 모순

라트는 현대인의 사랑이 가장 자주 부딪히는 딜레마 중 하나로 ‘사랑과 소유의 긴장’을 꼽습니다. 사랑은 본래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를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감정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를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을 감추곤 합니다. 이때 사랑은 자유가 아닌 구속이 되고, 상대를 위한 감정이라기보다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그는 특히 독점욕과 질투를 사랑의 그림자로 설명합니다. 상대를 향한 강한 감정이 자신의 불안이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 그 사랑은 쉽게 소유욕으로 변질되며, 상대방의 자율성과 감정을 억압하게 됩니다. 이러한 왜곡된 사랑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피로하게 만들고, 사랑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라트는 우리가 사랑을 소유하려고 할 때 실제로는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자유를 허용하고, 그 자유 속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신뢰의 형태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함께 지켜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이 자주 실패하는 이유를 외부 요인보다도 내면의 모순과 집착에서 찾으며, 소유가 아닌 관계 중심의 사랑을 회복할 것을 제안합니다.

현대인의 사랑이 흔들리는 이유

볼프강 라트는 현대 사회가 사랑을 지속하기에 점점 더 불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확장, 소셜미디어와 데이팅 앱의 확산, 성 역할의 유동성, 그리고 관계를 둘러싼 가치관의 파편화는 사랑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기회를 가졌지만, 그만큼 더 많은 불안과 회의 속에서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이 점점 ‘계약적 관계’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운명과 신의 뜻으로 여겨졌던 사랑이 이제는 효율, 가치, 투자 대비 만족이라는 조건 속에서 평가됩니다. 감정마저도 성과주의와 효율성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상황 속에서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하거나 무조건적인 감정이 아니라, 계산되고 교환되는 감정으로 변질됩니다.

라트는 이러한 사랑의 불안정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 기대는 자주 현실과 부딪혀 지속적인 좌절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충족되지 않으면 실패라고 간주되며,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감정적 인내력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은 더 짧아지고 더 자주 교체됩니다.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이 흔들리는 이유를 우리 내면의 혼란뿐만 아니라 시대 구조의 맥락에서 바라보며,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통찰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마치며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이라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 심리와 철학을 교차적으로 탐색한 지적인 여정입니다. 볼프강 라트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하고 재정의되는 과정이며, 그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이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사랑을 경험하며 혼란을 느끼는 사람, 감정의 모순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싶은 독자,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동시에 전해줍니다.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랑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문학적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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