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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배고픔에 관하여』 : 생물학이 말하는 허기, 굶주림의 정치와 윤리, 단식과 영성의 경계에서

by kdsnews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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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관하여』는 자연과 인간, 생물학과 윤리, 사회와 영성을 가로지르는 에세이스트 샤먼 앱트 러셀이 ‘배고픔’이라는 본능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를 다층적으로 탐구한 책입니다. 그녀는 배고픔이 단순히 먹지 않음에서 오는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척도이며, 신체와 마음, 사회 구조가 만나는 복합적이고도 심오한 인간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러셀은 자신이 직접 단식을 실천하며 체험한 고통과 각성, 그리고 전 세계에서 반복되는 기아의 현실을 연결하여 배고픔을 단지 결핍의 상태로 보지 않고,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통로로 삼습니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우리가 잊고 지내는 감각, 그리고 외면해온 고통에 대한 강렬하면서도 사려 깊은 성찰의 기록입니다.

생물학이 말하는 허기

러셀은 책의 초반부에서 ‘배고픔’이란 무엇인가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배고픔은 단순히 위장이 비어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복잡한 신경계와 호르몬 체계가 관여하는 정교한 생리적 메커니즘입니다. 렙틴, 그렐린, 인슐린 등의 호르몬이 신체의 에너지 상태를 감지하고, 뇌에 섭취를 요청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한 경고등을 켭니다.

그녀는 특히 인간이 느끼는 ‘지속적인 배고픔’과 생존을 위한 절대적 기아 상태를 구분하며, 단순한 허기와 생명을 위협하는 굶주림은 전혀 다른 경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짧은 단식은 때로 각성이나 자율의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 기아는 신체 조직을 파괴하고 감정과 인지를 흐리게 만들며, 삶의 모든 층위를 파괴하는 고통이 됩니다.

러셀은 또한 배고픔이 인간 본성에 새겨진 가장 원초적인 기억임을 이야기합니다. 인류의 진화는 끊임없는 식량 확보의 역사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본능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됩니다. 폭식, 다이어트, 식이장애, 감정적 식욕 등 우리의 식습관은 배고픔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배고픔이라는 생리적 감각을 넘어, 그 감각이 인간의 행동과 감정, 그리고 존재 방식에까지 미치는 생물학적이고도 실존적인 영향력을 조명하는 책입니다.

굶주림의 정치와 윤리

샤먼 앱트 러셀은 배고픔이 결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며, 정치와 경제, 전쟁과 개발, 빈곤과 차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오늘날에도 수억 명이 만성적인 기아 상태에 있으며, 이 문제는 단지 식량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 무관심의 구조, 그리고 국제 정치의 냉담한 이해관계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러셀은 식량 원조가 종종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실, 농업 보조금 정책이 저개발국 식량 자립을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짚으며, 배고픔이 단지 ‘결핍’이 아니라 ‘강요된 결핍’임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굶주림이 발생하는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윤리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닌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녀는 미국과 서구 사회의 풍요 속에서 일어나는 무관심과 ‘보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습관’을 지적합니다. 기아 문제는 뉴스의 하단에 묻히고, 자선 캠페인의 일회성으로 처리되며, 정작 구조적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러셀은 ‘배고픔을 외면하는 행위’ 자체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우리가 매일 누리는 식사의 풍경 뒤에 무엇이 지워져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들며, 배고픔을 바라보는 윤리적 감수성과 정치적 책임을 환기시키는 책입니다.

단식과 영성의 경계에서

책의 후반부에서 러셀은 자신이 직접 수행한 단식 실험을 토대로 배고픔의 영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을 탐구합니다. 그녀는 단식이 단순한 자학이나 금욕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면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을 끊고, 허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한계, 그리고 욕망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단식은 종교적 실천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의 금식일, 불교의 선식, 힌두교의 단식은 모두 몸을 비움으로써 마음을 채우는 수련의 방법이었습니다. 러셀은 이처럼 배고픔이 고통을 넘어 정신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단식을 낭만화하지 않습니다. 배고픔은 고통이며,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입니다. 영적인 체험으로서의 단식과 강요된 굶주림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며, 배고픔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차이를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즉, 배고픔은 신체적이면서도 윤리적인 감각입니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단식을 통한 자아 탐색과 굶주림의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물으며, 진정한 감각의 회복이란 타인의 배고픔을 느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며

『배고픔에 관하여』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각인 ‘배고픔’을 생물학, 윤리, 사회, 철학, 영성의 층위에서 통합적으로 성찰한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인문 에세이입니다. 샤먼 앱트 러셀은 자신의 단식 경험을 바탕으로 기아의 고통과 욕망의 본질, 그리고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풀어냅니다.

이 책은 음식과 생존, 욕망과 결핍, 타인의 고통과 연대의 조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철학적 사유와 실천적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몸의 감각에서 시작해 세상의 구조로 나아가는 가장 조용하지만 깊은 혁명의 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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