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역설』은 런던정경대(LSE)의 진화심리학자 가나자와 사토시가 ‘높은 지능’이 인간에게 언제나 유리한 것이 아님을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한 도발적인 책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능이 높으면 더 잘 살고, 더 행복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한다고 믿지만, 저자는 이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히려 높은 지능이 인간의 본능과 충돌하며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흥미로운 데이터와 이론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능과 본능의 충돌
가나자와 사토시는 인간의 뇌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사바나 환경’에 적응해 왔다고 말합니다. 이 사바나 이론(Savanna Principle)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여전히 원시 환경에 맞춰져 있으며, 현대 사회의 복잡한 환경에는 본능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능은 낯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보완 기제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능이 ‘비자연적인 상황’을 다룰 때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본능과 상충되는 행동, 예를 들어 야간에 활동하거나, 모노가미(일부일처제)를 선택하거나, 종교를 거부하는 것 등은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잘 실행하지만, 이는 동시에 진화적으로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연의 흐름이나 감정보다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는 인간관계나 행복감에서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지능은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지능 중심 사회에 대한 반성을 유도합니다.
『지능의 역설』은 우리가 얼마나 현대 사회에서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복잡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지를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며, ‘지능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진화심리학으로 본 현대사회
책의 핵심 프레임은 인간의 뇌는 여전히 수십만 년 전 사바나 환경에 맞춰져 있고, 그에 비해 현대 문명은 너무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데 있습니다. 문명은 빠르게 바뀌었지만, 인간의 본능과 감정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괴리가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을 만드는 주된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원시 환경에서는 고열량 음식에 끌리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비만과 건강 문제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지능이 높아질수록 비자연적 환경에 적응은 잘하지만, 그 결과 인간 본래의 감정 시스템과 부딪치게 되는 심리적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특히 저자는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진화적으로 새롭고 복잡한 문제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기존 질서나 사회적 규범을 의심하고, 기존의 가치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을 추구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행복이나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진화적 역설이 발생합니다.
『지능의 역설』은 지능이라는 단일 척도로 인간을 판단하는 현대의 경향을 진화심리학적으로 비판하며, 지능이 높다는 것이 반드시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복합적인 진실을 보여줍니다.
똑똑한 사람이 불행한 이유
책의 가장 도발적인 질문 중 하나는 “왜 똑똑한 사람이 더 외롭고 불행한가?”입니다. 가나자와 사토시는 지능이 높을수록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서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논리적 사고를 선호하고 감정의 흐름을 간과하거나, 대다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구 결과를 통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낮은 결혼율, 낮은 출산율, 높은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진화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적응’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이 개인적으로는 불균형 상태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지능이 높을수록 행복보다는 진실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세상의 부조리나 불완전함을 더 잘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지속적인 불만족과 자기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감정의 여유보다는 분석과 통제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내면의 안정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지능의 역설』은 높은 지능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균열을 내며, 오히려 똑똑하기 때문에 겪는 심리적 어려움과 불균형을 이해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마치며
『지능의 역설』은 지능이라는 능력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진화심리학적으로 성찰하는 깊이 있는 책입니다. 가나자와 사토시는 똑똑함이 반드시 행복이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되묻습니다.
이 책은 지능, 감정, 본능, 적응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현대인이 겪는 내적 혼란과 삶의 모순을 설명하며, 단순한 자기계발을 넘어서 더 깊은 인간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지능의 역설』은 지능을 넘어 삶을 어떻게 균형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