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은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가 개인의 내면과 사회 구조를 교차시켜 ‘모멸’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사람의 존재를 파괴하고, 현대 사회의 관계를 왜곡하는지를 분석한 책입니다. 그는 모멸이 단순한 감정의 상처가 아니라 존재의 부정을 경험하게 하는 폭력이며, 이 감정이 일상 속 어디에나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차별, 무시, 조롱, 낙인, 비교는 모멸을 양산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기제이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계와 문화적 패턴에서 비롯됩니다. 『모멸감』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쉽게 서로를 모멸하는지를 직시하게 하며, 그 감정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거울이 됩니다.
존엄을 위협하는 감정
김찬호는 모멸을 인간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배제되고, 존재 자체를 하찮게 여겨질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자존심이 상한 것을 넘어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너지는 체험입니다. 모멸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 파괴력은 육체적 폭력 이상일 수 있습니다.
특히 모멸은 직접적인 폭언이나 행위보다도 무언의 시선, 비교, 외면처럼 은근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주 발생합니다. 가족, 학교, 직장, 대중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줄을 세우고, 누군가는 '아래'로 밀려나며 모멸을 경험합니다. 그 과정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모멸을 느끼는 사람조차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는 이 감정이 반복되면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 자기 혐오와 타인에 대한 불신, 그리고 우울감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합니다. 모멸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침묵시키고 고립시키는 폭력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는 불신과 냉소, 자기 방어의 벽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모멸감』은 이 감정이 개인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붕괴시킨다는 점에서, 감정이 곧 사회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상에 스며든 차별과 위계
김찬호는 모멸이 구조적인 위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권력, 계급, 학벌, 외모, 경제력 등 다양한 차별의 기준들이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은 끊임없이 비교와 모멸을 낳습니다. 우리는 늘 타인과 비교당하고, '더 낫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군림하고, '덜 낫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는 특히 교육과 직장이 모멸의 공장처럼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학생은 성적으로, 직원은 실적으로,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낮은 순위를 받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존재 가치를 폄하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화는 ‘성과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잔혹한 모멸 시스템입니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적 문화와 집단주의적 풍토가 모멸을 정당화한다고 분석합니다. 위로부터의 압박은 그대로 아래로 전가되며, 모멸의 감정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됩니다. 윗사람에게 당한 수치심은 약자에게 향하는 방식으로 왜곡되어 ‘약자에게 더한 모멸’을 퍼붓는 구조가 됩니다.
『모멸감』은 이처럼 감정이 어떻게 문화와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사람들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며 공동체의 연대를 가로막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연대의 조건
모멸을 줄이기 위해 김찬호가 제안하는 핵심은 ‘존엄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하다는 근본적인 윤리 감각이 일상의 언어와 행동, 제도 속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식 개선이 아니라 존재를 대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는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낙인찍는 언어의 습관부터 되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청과 배려, 존중을 통해 관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이 모멸을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김찬호는 ‘연대’를 회복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개인이 고립되어 있는 한, 모멸의 감정은 계속해서 자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과 연결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공감과 지지를 형성할 수 있다면 모멸의 경험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연대는 단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과 확인의 과정입니다.
『모멸감』은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언어로 대하며, 어떻게 존엄을 지켜주는지가 사회 전체의 품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일깨우는 책입니다.
-마치며
『모멸감』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내가 무시당했던 모든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의 사회학이자 윤리의 철학서입니다. 김찬호는 모멸이라는 감정을 정밀하게 해부하면서도 그 너머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제시하며, 개인과 사회가 함께 변화할 수 있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 책은 감정과 인간관계에 민감한 사람, 일상 속 모멸의 구조에 의문을 품은 독자,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모멸감』은 감정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존엄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읽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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