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은 일본의 미학자 마쓰다 유키마사가 ‘눈’이라는 감각 기관을 단순히 보는 도구가 아닌, 사유의 기원으로 확장해낸 예술·철학 에세이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시각이 단순한 감각을 넘어 어떻게 인간의 감정과 인식, 문화와 사회를 형성해왔는지를 감각적 언어로 풀어냅니다. 회화, 사진, 건축, 디자인, 광고 등 다양한 시각 예술뿐 아니라, 일상의 풍경까지 시선의 대상이 되며, 이를 통해 독자는 ‘보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눈의 황홀』은 이미지 중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바라봄 속에서 어떤 진실과 환상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텍스트입니다.
시각의 감각적 철학
마쓰다 유키마사는 시각이 단지 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감각이 아니며, 우리의 정서와 사유 구조에 깊이 관여하는 ‘내면적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눈은 단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아니라, 그 현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며,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창조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본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해석’과 ‘기억’이라는 복합적인 심리 작용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눈이 가진 ‘선택적 기능’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풍경 속에서도 사람마다 집중하는 지점이 다르고, 같은 이미지를 보고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시각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각은 문화와 역사, 개인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며, 단순한 생리 작용을 넘어서 철학적인 층위로 확장됩니다.
또한 마쓰다는 눈이 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매개’가 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감시와 광고, 미디어와 이미지 정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보이고 싶은 자’와 ‘보게 되는 자’의 위치를 넘나들며 살아갑니다. 시선은 욕망을 담고 있으며, 그 욕망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조정될 수 있습니다. 시각은 곧 욕망의 움직임입니다.
『눈의 황홀』은 이처럼 눈이라는 감각 하나만으로도 삶의 모든 층위—개인, 사회, 예술, 철학—를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며, 시각의 감각적 본질을 아름답게 해석합니다.
이미지로 사유하기
마쓰다는 ‘언어 이전의 사유’로서 이미지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세상을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그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형성하며, 기억을 저장합니다. 이미지는 인류의 최초 언어이자, 가장 직관적인 사유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고대 벽화에서부터 현대의 광고 디자인까지 이미지가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해왔는지를 분석하며, 언어보다 빠르고, 더 깊은 수준에서 의미를 구성해내는 이미지의 힘을 탐구합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들어 이미지는 말보다 더 강력하게 감정과 여론을 움직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미지로 사유하는 시대’의 도래입니다.
하지만 마쓰다는 동시에 이미지가 갖는 환상성과 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이미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 현실, 혹은 누군가의 시선이 덧입혀진 ‘가공된 진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 해독 능력, 즉 시각적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지에 사로잡히기보다 이미지를 읽고 사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의 황홀』은 단지 보는 법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감각의 지도를 제시합니다.
시선을 따라 흐르는 문화 읽기
마쓰다는 시선이 머무는 곳에 문화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시선의 방향은 시대의 욕망과 규범, 금기와 이상을 드러냅니다. 그는 동서양의 예술, 도시 풍경, 디자인 요소 등을 비교하며 문화마다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섬세하게 해석합니다. 예컨대 동양 회화는 시점이 유동적이고 여백이 많지만, 서양 회화는 정중앙의 구도와 사실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시각적 세계관이 다릅니다.
그는 시선의 흐름을 통해 각 시대가 중요시했던 가치와 권력 관계를 읽어냅니다. 중세의 종교화는 하늘을 향한 시선을, 근대의 초상화는 자아를 향한 시선을, 현대의 광고는 욕망을 향한 시선을 중심에 둡니다. 즉, 우리는 시선의 방향을 통해 그 시대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해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도시 공간에서도 시선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주목합니다. 높은 빌딩, 대형 전광판, CCTV 등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시선을 통제하고 조절하는가’를 보여주며, 우리는 단지 보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문화는 결국 시선의 질서입니다.
『눈의 황홀』은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흘리는 시선을 멈추고, 그 시선이 어떤 감정과 가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문화적 미학의 책입니다.
-마치며
『눈의 황홀』은 ‘보는 것’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감각으로 끌어올린 감각의 미학서입니다. 마쓰다 유키마사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세계 자체가 달라진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각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그는 눈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존재, 사회, 예술, 문화의 구조를 시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합니다.
이 책은 예술과 철학, 디자인과 감각의 교차점에 관심 있는 독자, 이미지 중심 사회에서 '보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은 이들, 그리고 감각의 본질을 사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줍니다. 『눈의 황홀』은 눈으로 느끼고, 눈으로 생각하고, 눈으로 사랑하는 인간을 위한 지적이고도 감각적인 미학적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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