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인간』은 기독교 윤리학자 손봉호 교수가 철학, 신학, 윤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통’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한 저서입니다. 그는 인간이 왜 고통을 겪는지, 그 고통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며, 신앙과 윤리, 그리고 사회는 고통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학문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문체로 풀어냅니다. 이 책은 고통을 회피하거나 단순히 인내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의 본질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며,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철학적 기반을 제시합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삶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있는 지적이고도 묵직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인간 존재와 고통의 의미
손봉호 교수는 인간을 ‘고통받는 존재’로 정의하며, 고통이 인간 조건의 일부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통이 단지 육체적 또는 정신적 괴로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의미, 존재의 깊이를 좌우하는 근원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고,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는 고통이 인간을 타자에게 열리게 하는 힘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는 아플 때, 외로울 때, 상처받을 때 비로소 다른 고통에 공감할 수 있으며, 그 고통이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즉, 고통은 인간을 고립시키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공감의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이 과정에서 고통이 반드시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왜곡된 분노와 냉소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그 자체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에서 그는 고통을 이해하려는 지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고통을 단순히 회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이를 형성하는 중요한 실존적 경험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신앙과 윤리의 경계에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손봉호 교수는 고통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그는 고통이 하나님의 형벌이나 단순한 시험으로만 설명되는 전통적 종교 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허용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복합적이고 성숙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그는 고통의 문제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신앙을 통해 고통을 함께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성경이 고통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욥기의 사례처럼, 의인도 고통을 겪으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자세를 통해 신앙의 깊이를 더해갑니다. 이러한 접근은 고통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태도를 갖추게 합니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그는 고통의 문제를 조망합니다. 특히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합니다. 공감과 책임, 연대의 윤리는 타인의 고통을 단순히 안타깝게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행동하는 데서 완성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신앙과 윤리가 고통 앞에서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며 인간의 삶을 더욱 정직하고 책임 있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고통을 끌어안는 삶의 자세
손봉호 교수는 궁극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고통 없는 삶을 목표로 삼기보다,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라고 봅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현대 사회가 고통을 외면하고, 감추고, 심지어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만 인식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합니다. 쾌락과 효율,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고통은 불편한 진실이며, 그렇기에 오히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고통을 제거하려는 욕망이 오히려 인간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고통을 끌어안는 삶이란 자기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도 귀 기울이는 삶입니다. 그는 이를 ‘참된 인간다움’이라 표현하며, 이러한 삶의 자세가 결국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고통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입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피하고 싶은 고통을 오히려 받아들임으로써 더 깊고 넓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마치며
『고통받는 인간』은 철학적 깊이와 신학적 성찰, 윤리적 책임감을 동시에 담아낸 손봉호 교수의 대표적인 인문 에세이입니다. 그는 인간이 고통을 겪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안내합니다.
이 책은 삶의 이유와 의미를 고통 속에서 찾고 싶은 사람, 고통 앞에서 신앙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해온 독자, 그리고 인간으로서 보다 깊이 있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고통받는 인간』은 고통을 이해하고, 끌어안으며,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묵직한 삶의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