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인 기시다 슈가 대중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과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책입니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인의 삶과 어떤 접점을 가지는지를 명료하고도 유쾌한 문체로 소개합니다. 그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이전에 ‘결핍을 안고 태어난 존재’임을 강조하며, 정신질환은 단순히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우리 존재가 내는 신호이자, 더 진실한 나 자신과 마주할 기회라고 말합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심리학 입문자뿐 아니라 자기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철학과 심리의 접점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인간은 왜 병드는가
기시다 슈는 인간이 병드는 이유를 단순히 생물학적 결함이나 유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자기모순 속에서 병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 욕망, 기억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종종 고통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겪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특히 현대 사회가 ‘정상’이라는 기준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이상함’이나 ‘불안정함’을 제거하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병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삶의 균열이 드러나는 방식이며, ‘지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내면의 외침입니다. 즉, 정신질환은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존재의 신호입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정신병적 증상조차도 일종의 ‘방어기제’로 해석합니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왜곡된 방식이며, 그 방식이 무너지면서 고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걷어내고, 그 고통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병은 ‘치료’의 대상이기 전에 ‘이해’의 대상입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우리가 겪는 불안과 우울, 혼란이 단순한 이상 증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한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정신분석의 현대적 해석
기시다 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인의 감성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합니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무의식, 억압 같은 개념들을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정신분석이 단지 병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무의식을 ‘숨겨진 본성’이 아닌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진실’로 봅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기억을 말로 옮기지 못할 때,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의 층위에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정신분석은 그런 ‘말해지지 않은 것’을 조금씩 해명해 가는 작업인 셈입니다.
또한 그는 ‘게으름’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가 강요하는 생산성과 자기계발의 논리를 비판합니다. 그에게 있어 게으름은 반사회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되묻는 시간이며, 삶을 성찰하는 내면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심리적 문제를 단지 ‘극복해야 할 장애’로 보지 않고, 존재의 균열이 열어주는 통로로 이해하게 합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정신분석을 하나의 ‘치료 기술’이 아닌 ‘인간학’으로 바라보게 하며, 현대인이 겪는 고통과 혼란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병이 말해주는 진짜 나
기시다 슈는 ‘병’을 통해 우리가 억눌러왔던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울증, 강박, 불안, 공황은 단지 고통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존재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그는 병을 통해 ‘진짜 나’와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지만 중요한 과정인지를 강조합니다.
특히 그는 병을 사회가 정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사회적 규범에 맞추려는 자아와, 그 규범에 반발하는 또 다른 자아가 공존하며, 병은 이 둘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하나의 결과입니다. 그 충돌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그 긴장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그는 치유란 그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이 말하고자 했던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병은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통로입니다. 그는 병과의 공존, 이해, 대화를 통해 삶의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병든 자아를 부정하거나 고립시키기보다, 그 병이 품고 있는 삶의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철학적이고도 따뜻한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며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정신분석이라는 낯선 세계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혼란, 병의 정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기시다 슈는 정신과 진단명이 아닌, 삶의 균열과 욕망, 그리고 존재의 질문을 통해 인간을 사유합니다.
이 책은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자기 감정과 병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 그리고 정신분석을 철학적 시선에서 탐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넓고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병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묻고 또 사유하게 만드는, 지적 여정의 좋은 동반자입니다.
'도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고통받는 인간』 : 인간 존재와 고통의 의미, 신앙과 윤리의 경계에서, 고통을 끌어안는 삶의 자세 (0) | 2025.05.08 |
---|---|
[도서] 『고통받는 몸의 역사』 : 몸에 새겨진 중세의 사상, 고통의 정치성과 종교성, 몸을 통해 본 인간의 존엄 (0) | 2025.05.07 |
[도서] 『감정의 재발견』 : 뇌과학이 밝힌 감정의 원리, 이성과 감정의 공존 가능성, 감정은 삶의 안내자다 (0) | 2025.05.05 |
[도서] 『감정을 읽는 시간』 : 감정이란 무엇인가, 자기 감정을 이해하는 법,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힘 (0) | 2025.05.04 |
[도서] 『감각의 박물학』 : 감각으로 보는 세계의 확장, 과학과 시가 만나는 순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각의 예술 (0) | 2025.05.03 |